나를 보내지마 = Never let me go
<나를 보내지 마>를 다 읽고 책을 덮고나면 마음이 무너지는 이유가 있다. 작가는 인간을 정의하는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놀랍게도 인간 대신 '복제인간' 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소설은 간병사가 된 주인공 캐시 H. 가 어렸을 적 기숙사 학교 헤일셤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루스, 토미와 친구가 되며 지내지만 그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들의 존재가 일반적이지 않다(혹은 선생님들이나 외부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미스 루시의 의미심장한 발언들, 임신할 수 없다는 교육, 자신들을 향한 마담의 태도 등을 통해 이는 더 분명해진다.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다가 코티지에서의 로드니와 크리시로 부터 듣게 된 루스의 '근원자'를 찾기위해 나선 노퍼크 여행에서 이들의 절망감은 절정에 다다른다. 사이가 멀어진 캐시와 루스는 관계의 소원과 회복을 반복하다가 결국 캐시는 코티지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간병사가 된다.
간병사가 된 캐시는 어릴적 헤일셤 때 친구 로라를 만나게 되며 이로부터 소원해졌던 루스의 기증소식을 듣고 루스의 간병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찾아가게 되며, 곧이어 토미도 찾게 된다. 이렇게 다시만난 셋은 외곽에 있는 배 한척을 보러 떠나며 이때 루스는 그동안 자기가 토미랑 사귀며 캐시와 토미 사이를 훼방놓았음을 고백하며 용서의 의미로 '집행연기'(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증명하여 기증을 3-4년 동안 미루는 것)를 알아볼 수 있도록 마담의 주소를 캐시에게 건넨다.
이윽고 마지막 기증을 하고 루스가 죽고 캐시와 토미는 루스가 준 쪽지에 적힌 주소로 찾아가 마담과 헤일셤 교장선생님이었던 미스 에밀리를 대면하게 되고, 집행연기 소문에 대해 묻지만 사실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 때 캐시는 그동안 캐시 자신을 포함해 루스, 토미에게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던 갤러리의 의미에 대해 물었고, 선생님은 너희, 즉 복제인간들에게 영혼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림을 모았던 것임을 밝힌다.
이때 캐시가 한 아래의 말에는 캐시와 토미가 느꼈을 허망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째서 그런 걸 증명하셔야 했던 거죠, 에밀리 선생님?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p.357)
소설 초반부터 줄곧 주인공들 사이에서 여러 추측과 의심, 불안을 야기했던 소재에 대해 이 후반부의 캐시, 토미, 마담과 미스 에밀리의 대면은 캐시의 시점으로 사건들을 따라왔던 독자들에게도 큰 허망함과 배신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가장 기대했던 것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이들의 존재가치이자 존엄성 그 자체가 짓밟혀지는 모습 때문에 내 마음도 무너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결말에는 (드디어 맺어진) 캐시와 토미가 어디 도망가서 행복하기라도 했으면 하고 응원하게 되지만 소설은 토미가 마지막 기증으로 세상과 작별을 고하며 혼자 남은 캐시가 기증을 앞둔 모습으로 끝이난다.
작가는 주인공들이 도망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그런 세계에서 나고 자라, 그래서 아는게 그게 전부라면, 넘어야 할 경계를 보지 못하고, 무엇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주어진 운명 안에서 때로는 용맹스럽게 살아내고, 우정을 찾고 사랑을 찾으며,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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